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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으로 본 IT 기업의 어두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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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뉴스 첫머리 시작은 오늘 몇 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했다는 소식이었다. IMF라는 것이 국내에 알려지기 전부터 우리나라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다. 몸으로는 실감했지만 그것이 국가 부도 사태까지 갈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이 시기엔 PC(개인용 컴퓨터)가 한창 보급되던 때이기도 하다. 기업이 줄도산하는 마당에 대학을 졸업한다고 취업이 보장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취직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기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전자계산기였다. 즉, 정보처리를 배워 PC를 잘 다루면 이 어려운 시기에 취직은 잘 될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또 인터넷이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IT(정보처리 Information Technology) 시장은 빠르게 변하던 시기였기에 각 대학들도 앞다둬 전산 관련 학과를 도입했고 경쟁률도 높았다. 이때부터 IT 인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IMF는 우리나라 산업 전반을 디지털화 하는데 크게 작용했다. 기존의 생산 기반 기업들은 줄도산했고 대기업도 버티기 어려웠다.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일자리 정책으로 밴처 육성을 적극 밀고 나갔다. 창업 열풍이 불었고 크고작은 회사들은 너도나도 프로그래머 모시기에 바빴다. 전산관련 학과 졸업생은 면접만으로도 취업이 됐다. 밴처 시장에서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만큼 돈이 돌았다. 강남 술집엔 20대 사장들이 단골이라고 할 정도로 그럴듯한 사업계획서 만으로도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던 시대였다.

 

 

< 네이버 >

국내 포털 업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네이버도 처음부터 잘나가던 기업이 아니었다. 1990년대 말에는 닷컴버블이라고 할만큼 IT 기업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야후, 라이코스 같은 해외 검색 엔진부터 엠파스, 네이버, 다음(한메일), 첫눈, 네이트 같은 국내 포털까지 여러 업체가 경쟁하고 있었다. 몇 년 뒤에 닷컴버불이 꺼지면서 지금의 형태로 IT 기업들이 통폐합 됐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국산 기업 살리기 운동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네이버, 아래아한글이었다. 물론 8.15콜라 등이 포함되기도 했다. 필자 역시 당시에 구입한 아래아한글 CD를 아직도 기념처럼 간직(?)하고 있다. 국산 애용 운동의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네이버와 아래아한글은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얻을 정도록 덩치가 커버려 오히려 소비자들이 기업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 시절엔 다양한 유틸리티 개발 업체부터 보안 회사, 게임 회사 등도 본격적으로 국내 밴처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어제 밴처 회사가 하나가 망하면 오늘 밴처 회사 두 개가 생길 정도였으니 IT 개발자들은 서로 모시기 경쟁이었다.

 

그렇게 귀한 몸이 된 IT 개발자는 정말 귀한 몸이었을까?

 

같은 과를 졸업한 동문들 상당 수가 파견업체에 취직했다. 교수들에겐 취업률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입사한 회사가 어떤 곳인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파견업체는 말 그대로 인력시장이나 나름 없다.

< 출처 : 김국현. 가져온 곳 : 머니투데이 >

 

지금도 인터넷에서 레전드인 만화 컷이다. 90년대 말에서 2000대까지는 일본으로 수출 당하는 개발자들도 많았다. 이렇게 파견업체가 첫 직장이 된 사람 중엔 퇴사 할 때까지 자기가 입사한 소속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운이 좋아 밴처 기업에 취업하게 된 개발자들은 마땅한 숙소도 없이 회사에서 먹고 자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아니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사무실 한 켠에 라꾸라꾸 침대가 있으면 개발자용인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간 개발자들은 고시원에서 지내는 경우도 많은데 그나마도 짐을 보관하는 용도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한다는 말이 있는데 퇴근 못하는 개발자가 태반이었다.

 

개발자의 노동강도는 최악이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반 쯤 풀린 눈, 청바지 아니면 추리닝을 입고 유령처럼 건물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이 귀신이 아닌 개발자 이미지로 굳어졌지만 유머 아닌 유머로 넘겨왔다. 최저임금법을 개정 할 때도 IT 노동자는 규정에 예외로 둘 정도로 제도권에서도 외면을 받아왔다. 그때도 지금도 개발자는 노조도 갖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대학생들의 공무원 쏠림 현상은 더 심해졌다. IT 전공자들도 개발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 보다 공무원 시험에 유리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먼저 개발자로 취업했던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너는 개발자 되지 말라는 게 가장 애정있는 충고가 됐다. 그렇다고 IT 개발자가 품귀현상이 된 건 아니다. 꼭 전공이 아니어도 학원이나 독학으로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급은 계속 이어졌다.

 

몇 해 전 위디스크 사건이나 네이버의 직장내 괴롭힘과 폭력은 어쩌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많은 기업에서 이런 폭력저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90년대 말부터 정부는 IT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으며 밴처를 육성했지만 정작 개발자의 처우개선이나 인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과거 코스콤 집단파업 때처럼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최근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몇몇 기업들에서 직원들 복지를 외부에 공개하면서 구글 부럽지 않은 근무환경을 자랑하지만 정말 구글같은 근무환경을 제공받고 있는지는 개발자들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SW 개발자 이직률이 왜 그렇게 많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수주 받았는데 자바 개발자가 3명 정도 필요해 충원했다고 가정하자. 1년 정도 걸려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곧바로 다른 프로젝트를 수주 받았는데 이번엔 파이썬 개발자가 필요하면 기존의 자바 개발자가 다시 파이썬을 공부해 새 프로젝트 팀에 합류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회사들은 다음부터 인원을 충원할 때 자바, 파이썬, 웹 모두 가능한 개발자를 채용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개발자가 그 회사에 취업이 됐을 때 능력만큼 처우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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